전시소개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Annie Ernaux)는 사진 에세이집 ‘사진의 용도’에서 ‘필름 카메라’라는 명칭이 디지털 카메라에 대비된 소멸의 운명을 암시한다고 썼다. ‘이 용어는 몇 년 전 디지털과 구별하기 위해 등장한 것으로 (…) 이러한 식별로 후자를 위해 전자의 계획된 종말을 알리는 것이, 내게는 몰상식하고 적용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므로, 내가 여전히 고집하는 용어는 그저 ‘사진기’라는 말뿐이다.'(아니 에르노, ‘사진의 용도’, 11쪽.)

필름 카메라가 앞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의 핵심에는 더 편리하고 유용한 디지털 카메라(본 글에서는 ‘디지털 정보로 상을 변환, 기록하는 카메라’)의 등장이 있을 것이다. 두 종류의 가장 큰 차이는,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것은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반면 디지털 카메라는 그 상을 곧바로 확인시켜준다는 점에 있다. 디지털 카메라의 특성은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을 목표한 대로 담아냈는지 점검하지 못한다는 필름 카메라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했다. 대부분 기계가 목적에 효율적으로 부합하는 방식으로 발전한다는 점에서 필름 카메라의 소멸을 예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필름 카메라는 예견된 죽음보다 오래 살아 있다. 아날로그 방식에 대한 호의는, 디지털 카메라로 치환하기 어려운 필름 결과물의 질적 차이에 대한 옹호에 근거하기도 하지만, 효율과 편리를 덜어내면서 얻어지는 가치 신뢰에 기반하기도 한다. ‘Film Portrait’은 그중 후자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필름 작업으로 추구되는 의도적 불편함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피는 것이 이번 전시를 이해하는 핵심일 것이다.

작가는 재현의 간편함이 존재의 단순함으로 손쉽게 오해된다고 믿는다. 그에게 사진이란 타자와 맞닿기를 바라는 기도이고, 사진의 과정이란 그것의 진실함을 축적하는 순례에 가깝다. 요컨대 ‘Film Portrait’의 작업은 정성을 요구한다. 이는 오랜 시간을 쓴다는 뜻이면서 일부러 불필요한(혹은 비효율적인, 제약 있는) 과정을 거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시된 작품은 모두 필름으로 촬영한 이미지이며, 가장 빈번하게 쓰인 중형 필름은 1롤에 고작 10-15컷을 찍을 수 있다. 카메라 대부분은 지나치게 무겁고, 빛의 양을 스스로 측정하지도 못하고, 수동으로 초점을 조절해야 하는 기계다. 또한 전시된 사진 대부분은 아날로그 인화 방식인 RA-4 프로세스를 통해서 완성됐다. RA-4는 컬러 사진 인쇄물을 만드는 고전 인화 방식 중 하나다. 완벽한 어둠이 보장된 공간을 필요로 하며, 창작자는 세밀한 색상 값을 측정하고 빛 쬐는 양에 따라 변화하는 밝기를 시시각각 기록해야 한다. 0.n초 단위로 변화하는 밝기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색상을 제대로 확인하는 과정은, 원하는 상을 발견할 때까지 최소 수 시간을 요구한다.(이마저도 확실하게 파악되지 않는 변수에 둘러 싸여 있다.)

디지털 기술의 조건에서 수천 장을 남기는 노력으로 고작 몇 장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것이 작가의 방법론이다. 이미지 완성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촬영 컷 수도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작가는 셔터 누르는 행위를 주저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주저함이 작가가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사진적 태도이다. ‘Film Portrait’에 실린 사진 전반에서 고요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의 초상에선, 마치 물 속에 있는 것처럼 느릿한 시간성과 머나먼 공간성이 느껴진다. 조심스러움으로 확보된 자리에서 피사체는 촬영(Shoot) – 생추어리 동물의 초상을 찍은 이사 레슈코는 자신의 사진집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와 총을 쏘는 행위가 같은 동사(Shoot)임을 지적한 바 있다 – 의 두려움을 조금씩 덜어낸다. ‘Film Portrait’의 초상 속에서 피사체는 자신만의 평안으로 존재한다.

제한 조건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종류의 망설임을 축적하려는 까닭은 사진 예술의 폭력성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타자를 왜곡하거나 도려낸다는 점에서 폭력적이고, 이는 경계될 수 있을 뿐이지 소멸하지 않는다. 수전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썼다. ‘사람들을 촬영한다는 것은, 그들을 침해하는 일이다. 촬영 대상 자신은 결코 볼 수 없는 방식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당사자들이 스스로는 결코 가질 수 없는 그들에 대한 지식을 소유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윤리적 태도란 바로 이러한 사실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의도적으로 불편을 감수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서 사유의 자리를 만드는 것은 피사체에게 그러한 의지를 증명하는 과정이면서 자기 스스로 타자를 어떤 방식으로 대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하게 만드는 방지턱이 된다.

오랜 걸음의 밀도를 통해서 기도의 무게를 채워가듯, 하나의 상을 맺기 위해 쏟는 오랜 정성으로 피사체의 존재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마음을 상기시킨다. 사진이라는 재현의 도구로 그에 반대되는 인식적 노력이 어떻게 가능한지 살피려는 노력이 ‘Film Portrait’의 이미지를 이루고 있다. 사진은 순간을 고정하고 삶은 지속되므로 반드시 왜곡과 오해가 발생하겠지만, 그 과정의 불가능성을 기억하고 피사체의 타자성을 존중하길 노력하는 과정이 사진 예술의 윤리 중 하나일 것이다. fin.


전시명

  • Film Portrait

참여 작가명

  • 이찬영

전시구분

  • 사진

전시주제

  • 필름 초상

전시기간

  • 2023.5.27(토)~2023.5.29(월)

관람시간

  • 5/27~28 – 12:00~19:00 / 5/29 – 13:00~17:00

관람비용

  • 무료관람

관람연령

  • 연령제한없음

소개 링크



전시장소

  • 갤러리 에그템페라
  • 서울 마포구 서강로11길 17 1층 지도보기

주차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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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 홍대입구역 6번, 신촌역 7번 출구 도보 6~9분